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코모 카사노바 (문단 편집) === 정치적 수구성과 모순 === 카사노바가 당대의 '자유인'이었다는 평가를 의심할 만한 근거로 카사노바가 보여준 극단적 수구성이 있다. 위에 소개된 러시아에서의 노예 소유 문제를 보더라도 카사노바는 당시의 러시아 사회에 만연한 강압과 폭력을 정확히 읽어내고, 이런 폭력적 분위기 속에서 하인과 주인, 부하와 상관의 상하관계에서 윗사람이 폭력을 써서 다스리지 않으면 오히려 아랫사람에게 경멸당하고 폭력을 쓰면 두려움 섞인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해 자신도 그것을 이용해 저항할 수 없는 나이 어린 소녀를 돈으로 사서 폭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카사노바는 사회의 부조리나 불평등에 저항한 인물이 아니라 그것을 악용한 인물이었다. 이뿐 아니라 말년의 카사노바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남긴 평가 역시 충격적이다. 물론 당대의 기준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참혹한 대소동이었던 것은 분명하고 이에 대한 비판 정도는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혁명에 대한 카사노바의 분개는 '천한 것과 추한 것들이 주인이 되고, 그 때문에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카사노바는 절대로 평등주의자가 아니었다. 카사노바에게 있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천하고 추한 것을 지배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카사노바 자신도 온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편력 과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귀족으로 사칭했다. 카사노바는 귀족들의 특권과 오만에 반대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도 그것을 가지고 싶어했던 인물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폴란드 출신 명문귀족 청년과 어쩌다 결투를 하게 된 후, (결투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계급끼리 하는거니까) 이를 이용하여 자신 역시 귀족이라고 행세하고 돌아다녔다.]. 카사노바의 이런 수구적 성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그 시대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해군의 주축인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있었다. 한 부류는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자유인 노꾼이었고 다른 부류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처벌로 일정 기간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역에 처해진 죄수들이었다. 당대의 베네치아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유인 노꾼들은 당연히 나름대로의 사회적 존중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죄수 노꾼들은 명예를 잃은 사람들로서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카사노바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것'인데, 그 이유인즉 죄수들은 국가의 강압에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지만 월급을 받는 자유인 노꾼들은 '돈에 자신의 자유를 팔아넘긴 천박한 인간'들이니 강제로 자유를 빼앗긴 인간들보다 더욱 경멸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카사노바에게 있어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것은 경멸받아 마땅한 천박한 일이었던 것이었다. 본인도 그 원칙에 따라 평생 동안 사기로 울궈낸 돈으로 먹고 살지언정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정당하게 노동하는 일은 없었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청담사상|흔해빠진 귀족 출신 파락호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물론 당시 유럽 귀족들이 이와 같은 '노동에 대한 경멸' 정서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조차 사회를 부양하고 자신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보다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들을 더 명예롭게 대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이와 같은 상식조차 무시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사노바의 다른 문제점으로 뻔뻔하고 노골적인 이중잣대도 들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시기, 오페라 극장을 방문한 카사노바는 10대 초반의 어린 [[발레리나]]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발레리나 중 하나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약으로 정신을 차리게 도와줬다고 한다.[* 20세기 이전의 여성 복식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심하게 조여서 건강에 아주 안 좋았고, 그래서 조금만 무리하거나 힘들면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smelling salts라 불리는 (방향소금 등으로 번역) 암모니아 결정처럼 냄새가 강한 약을 상비하고 있다가 기절하면 그 냄새를 맡고 정신을 차리는 데 쓰곤 했다. 카사노바 역시 이런 걸 갖고 있다 써먹은 것.] 그 뒤 기절했다 깨어난 발레리나가 다른 친구들에게 '임신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임신 상태에서 허리를 꽉 졸라매기까지 했으니 기절할 만하다.] 10대 초반의 소녀가 임신했다는 것에 깜짝 놀란 카사노바는 소녀에게 '결혼한 부인이신 줄은 몰랐다'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소녀는 친구들과 함께 깔깔 웃어댔다. 소녀는 연인과 [[혼전임신|혼전관계로 임신]]한 미혼이었고, 깔깔댄 것은 카사노바를 꽉 막힌 꼰대 취급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눈치챈 카사노바는 자서전에서 "발레리나들이 문란하다"고 투덜거리며 "앞으로 다시는 발레리나들을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릴 했다면야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카사노바이지 않은가. 당장 카사노바가 건드린 처녀가 몇인데. 애초에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리나들을 집적거린 것 자체가 꼬시려는 목적에서였던 인간이 자기가 꼬시려던 소녀들이 다른 남자와의 관계로 임신했다는 걸 알자 문란하다고 까대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카사노바의 이중잣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것뿐이 아니다. [[영국]] 방문 당시 사교계의 모임에 참석한 카사노바는 그 모임에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당한 인물의 가족들이 함께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명예를 잃은 죄인의 가족이 이런 자리에 함께할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른 영국인들의 대답은 "저 사람들은 죄를 지은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일 뿐이고, 무엇보다도 그 죄를 저지른 본인 역시 비겁하게 도망치거나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처벌(사형)을 받아 죗값을 치렀으니 명예를 잃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에 카사노바는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은 정말 이상하다" 고 조롱하는 글을 자신의 자서전에 남겼다. 즉, 카사노바는 남의 죄에 대해서는 일단 죄를 저지르면 설령 죄값을 치른다 해도 명예를 잃지 않을 수 없고, 그 가족들에게도 책임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아주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던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의 범죄에 대한 카사노바의 태도는 위에서 구구절절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죄값을 치르기 싫어 탈옥을 포함해 평생 온 유럽을 도망다닌 것이 카사노바였다. 자신의 도덕적 과오에 대한 관점과 타인에 대한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 굳이 카사노바의 도덕적 관점에서 일종의 일관성을 찾아보자면, 카사노바에게 있어서 도덕이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처벌을 피하는지에 대한 기술적 문제였을 가능성은 있다. 즉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되니까 안 하는게 아니라 처벌이 무서워서 안 하는 것이고, 처벌을 피해 도망칠 자신이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을 수는 있다는 것. 말하자면 자기는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녔어도 잡혀서 처벌은 안 받았고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과거에 한 나쁜짓을 모르니 자기는 명예로운 사람이고, 걸려서 처벌을 받으면 그때는 죄인이 된다는 관점으로 도덕 문제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법과 윤리에 대한 카사노바의 이중적인 잣대를 보여주는 또또 하나의 사례로 금육일 사건이 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를 여행중이던 카사노바는 [[금육재|금육일]]에 머무르던 여관에서 고기 요리를 주문했지만, 여관 주인에게 "오늘이 금육일인 거 모르냐" 면서 거절당한 바 있다. 이 거절에 카사노바는 "나는 [[교황]] 성하께 직접 금육을 면제하는 관면장을 받았으므로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 고 받아치지만, 카사노바의 기대만큼 어리숙하지 않던 여관 주인은 "그러면 관면장을 보여달라"고 응수한다. 물론 관면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거짓이었고, 당연히 카사노바에게는 보여줄 관면장이 없었다. 그리고 이 일로 한참 실갱이를 벌이는 카사노바와 여관 주인을 보고 여관의 다른 투숙객이 "설령 당신이 정말 관면을 받았다 해도 관면장을 갖고있지 않으니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 않으냐? 관면장을 지참하지 않은 것은 당신 책임이다" 라고 상황을 정리한다. 그런데 카사노바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거짓말쟁이로 취급한, 꽉 막힌 여관 주인과 손님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즉 카사노바 자신은 자기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로 타인을 속이려 하는 인물이면서도, 상대가 그 거짓말에 속어넘어가지 않고 카사노바의 거짓말을 지적하면 마치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로 매도당했을 때처럼 "왜 내 말을 믿지 않느냐"고 분노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거의 유아적이라고까지 해야 할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편향성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 더 나아가, 카사노바에 우호적인 재평가론의 상당부분은 이런 일화들을 두고 <당시 사회의 부당한 억압(교회법 등)을 재치와 꾀로 뛰어넘단 당대의 자유인이자 모험가> 로써 카사노바를 재평가하자는 것인데, 상기된 카스트라토 소년과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카사노바는 그 부당한 억압이 자신에게 가해질때(금요일에 먹고싶은 고기요리를 못 먹을 때)는 분노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카스트라토 소년을 위력으로 간음하고 싶을 때)는 이런 부당한 억압을 적극적으로 악용하는 인물이었다. 즉 카사노바의 관점은 '''[[후쿠자와 유키치|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는 것이었고, 사회의 법과 규범이란 자기는 안 지켜도 되지만 남은 지켜야 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정리하면 그는 이념이나 사상 자체에 딱히 깊은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본인의 쾌락 충족에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했던 것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